오늘 점심 뭐 먹지?
점심 메뉴를 고르는 건, 대한민국 (거의) 모든 직장인의 고민일지 모릅니다. 매일 같은 동네에서, 매일 같은 예산으로 밥을 먹는데도 말이죠. 반면 ‘누구랑’ 먹을지 고민하는 일은 조금 적은 것 같습니다. 대부분 같은 부서, 혹은 친한 사람들끼리 점심을 함께 먹으니까요.
지난 글(‘새내기를 맞이하는 방법’)에서 말한 것처럼, 피플펀드는 어느덧 100여명 규모의 조직이 되었습니다. 전직원이 자연스럽게 친해지던 예전과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죠. 이제 일주일 동안 인사한 번 못하고 지나치는사람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숨가쁘게 달리는 현실 속에서도 우리는 늘 이상을 좇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구성원들끼리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친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죠. 물론 ‘일로만난사이’ 우리가 모두 사적으로 친할 필요는 없겠지만, 서로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안다면.. 좋잖아요!?
오늘은 누구랑 먹지?
그리하여 피플펀드의 문화에 대해 고민하던 자치조직 컬처커미티는 ‘랜덤런치버디’(aka랜런버)를 기획했습니다. 내용은 아주 간단합니다. 매주 새로운Random 친구buddy들과 점심Lunch을 먹는거죠.
식사는 일상적인 행위지만, 식사를 ‘함께’ 하는 것은 꽤 특별한 경험입니다. 서로 대화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각자의 일상(그리고 일상적인 모습)을 공유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식사는 친했던 사람은 더 친해지고, 친하지 않았던 사람도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그렇지만 친하지 않은 사람들끼리는 무엇을 하든 어색하고 불편할 수 있습니다. 밥 먹으러 왔다가 밥만 먹고 헤어질 수도 있겠죠. 그런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랜런버’에는 일반적인 점심과 다른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산’과 ‘시간’.
우리들의 맛있는 추억
어떤 시간은 맛으로 기억된다고 합니다. ‘랜런버’를 그런 시간으로 만들기 위해 ‘랜런버’의 예산은 평소의 약 2배입니다. (인당 1만5천원이니 평소보다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겠죠?) 각자 원하는대로 메인요리에 올인할수도 있고, 간단한 식사 후에 티타임을 가질 수도 있고요.
서로 조금 친해질락 말락 하다 헤어지지 않도록, 점심시간 역시 평소보다 조금 더 넉넉하게 1시간 30분입니다. 엄청나게 긴 시간은 아니지만, 평소보다 조금 먼 곳에서 식사를 하거나 식사 후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귀여운 미션은 ‘랜런버’끼리 인증샷을 찍어 슬랙에 공유하는 것. 결국 남는 건 사진이라더니, 우리들이 함께한 시간의 흔적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습니다.

어쩌면 ‘랜런버’ 때문에 입사한 사람
매주 수요일, 휴가 혹은 다른 일정으로 인해 ‘랜런버’에 참석하지 못하는 인원을 제외하고 조를 발표합니다. 매번 조를 짜는 것도, 조별로 알아서 DM을 개설하는 것도 사실 조금은 번거로운 일이지만, 다행히 자동화를 사랑하는 팀원이 자동 조추첨 기능과 조별로 DM을 생성하는 기능을 만들어주었죠. (최고!)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매주 ‘랜런버’ 조를 발표해주는 HR팀의 경근 님은 사실 입사 전부터 이미 ‘랜런버’를 알고 있었답니다. 아니, ‘랜런버’ 덕분에 피플펀드를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믿기지 않는 사연에 관해 직접 들어봤습니다.)
경근 님 이야기
모든 것을 새롭게 창조해야 하는 전형적인 스타트업, 막 걸음마를 뗀 웹에이전시 경영팀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던 시절이었죠. 당시 저에겐 잘나가는 스타트업들의 성공사례가 모두 훌륭한 교과서였어요.
그때 우연히 피플펀드의 문화에 대해서 알게 됐어요. 일주일 중 하루를 정하여, 평소에 자주 대화를 나누지 못한 사람과 점심을 먹으며 교류를 나눈다. 참 괜찮더라고요. 이름도 입에 착 달라붙었어요, 랜덤런치버디. 줄여서 랜런버.
하지만 당시 회사에 ‘랜런버’를 제안하긴 쉽지 않았어요. 점심시간을 구속한다고 느낄수도 있고, 규모가 작은회사여서 항상 항상 다 같이 식사하는 분위기였거든요. 결국 그 회사에서는 공식적인 이름은 정하지 않고 비슷한 프로그램을 시작했어요. 두셋씩 짝지어 각자의 관심사를 나누고 인증샷을 찍어오는 작은 미션을 부여한 뒤에, 오후에는 다같이 모여 서로에게서 발견한 새로운 것들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죠.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피플펀드의 ‘랜런버’는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서 발생했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태어났는데 작은 규모의 회사에서 그런 활동을 시도했던 것이 조금은 웃픈 일이었어요.
어쨌든 그후에 이직을 준비하던 중 피플펀드에서 사람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그때 ‘랜런버’ 회사구나!” 하며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요. 그런데 어느덧 제가 그 ‘랜런버’를 매주 기획하고 운영하는 사람이 되었네요?
(이야기 제공: @ericstagram)
랜덤런치버디(aka랜런버) 간단 요약
– 사람이 늘어나면서 모르는 팀원이 많아졌다. (거리감/소외감)
– 평소엔 자연스럽게 친한 사람들끼리만 밥을 먹는다. (소통단절)
> 매주 1회, 모두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자. (소속감/소통)
+ 어색할 수 있는 시간을 ‘맛있는 음식’으로 채우자. (좋은 기억)
+ 밥 먹느라 말을 못 할 수도 있으니 ‘추가 시간’을 주자. (여유)
우리 함께 ‘랜런버’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