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신용자를 위한 업권은 없다
앞서 살펴봤듯이, 국내 중금리 대출 공급은 매우 심각한 문제임에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입니다. 수요가 분명함에도 중금리 대출 시장이 형성되지 못한 이유는 중신용자 및 중금리에 특화된 대출을 취급하는 업권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용등급별 주요 이용 금융회사 및 평균 금리를 보면 중신용자(4~7등급)에게 10~15% 수준의 금리를 제공하는 곳이 없습니다. 고신용자에게 저금리 대출을 공급하는 1금융권 은행과 중저신용자에게 고금리 대출을 공급하는 2금융권으로 양분될 뿐입니다.
업권별 차입자의 신용등급 분포를 봐도 전체 차입자 중 40%를 차지하는 3~6등급의 비중이 1금융권에서는 26%에 불과합니다. 반면 1~2등급의 비중은 절반을 훨씬 초과(65%)합니다. 은행의 개인신용대출이 고신용자에 철저히 집중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축은행은 5등급 이하의 비중이 90%에 달하고, 그중 7등급 이하 저신용자의 비중이 38%를 차지합니다. 금리도 높습니다. 국내 상위 저축은행들의 개인신용대출 평균 금리를 보면 모두 20% 수준입니다.
이와 반대로 저축은행업권은 5등급 이하의 비중이 90%에 육박하고 이 중 7등급 이하 저신용자가 38%를 차지합니다. 고객의 신용이 낮은 만큼 고금리 대출의 비중은 높습니다. 국내 상위 저축은행들의 개인신용대출 평균 금리를 보면 모두 20%에 육박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신용자에 집중하는 은행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은행은 신규 대출액 가운데 중금리 대출 비중이 1%에 불과하며, 그마저 정책자금을 제외하면 0%대일 정도로 중금리 대출에 소극적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낮은 수익성입니다. 차입자의 신용이 낮을수록 부실 발생에 따른 손실과 연체 관리를 위한 비용이 더 발생합니다. 1~2등급의 채무불이행 가능성은 0.05~0.16%에 불과하지만, 신용등급이 낮아질수록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가파르게 증가합니다.

신용등급이 낮을수록 대출 실행을 위한 제반 비용 대비 수익성도 낮아집니다. 일반적으로 인당 대출 한도는 차입자의 신용도에 비례하기 때문에, 신용이 낮아지면 인당 대출금액ticket size이 낮아집니다. *실제로 2019년 7월 은행 개인신용대출의 인당 대출 금액을 보면, 고신용자 대비 중신용자의 인당 대출 금액은 30~50% 수준에 불과합니다.
*은행 인당 개인신용대출액(1등급: 42.9백만 원, 3등급 26.4백만 원, 5등급 15.8백만 원), 2020.7, NICE 평가정보
은행이 중금리 대출을 꺼리는 두 번째 이유는 건전성 및 평판 관리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은행은 강도 높은 규제가 적용되어 건전성을 유지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대출 잔액이 같더라도 중저신용자에게 중금리 대출을 많이 공급한 은행일수록 위험가중자산 비중이 상승, *BIS 비율이 떨어져서 규제 대응이 어려워집니다.
*BIS 비율: 은행의 건전성을 평가하는 대표적인 지표로 자기 자본을 위험가중자산(상환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돈)으로 나눈 값.
기존에도 1금융권에서 중금리 대출 공급을 늘리려고 시도했지만, 부실률이 높아지면서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었습니다. 또한 은행이 서민을 상대로 높은 금리를 받는다는 비판까지 받으며 사업을 중단한 이력이 있습니다. 안정적인 수익원(고신용자)을 보유한 은행은 이러한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중저신용자로 저변을 넓힐 동기가 없습니다.
높은 비용 낮추지 못하는 저축은행
저축은행 등 2금융권은 평균 금리가 20%에 달하는 고금리 대출을 취급합니다. 이들이 높은 이자를 요구하는 이유는 비용 구조와 관련이 있습니다. 대출 금리를 낮출 수 없는 가장 큰 이유 두 가지는 부실로 인한 손실이 많고, 차입자 모집 비용도 높기 때문입니다.

높은 부실률로 인한 손실 금액은 저축은행의 비용을 높이는 가장 큰 요인입니다. 부실률이 높은 것은 저축은행의 리스크 평가 역량과 연관이 있습니다. 대형 업체 몇 곳을 제외한 국내 79개 저축은행 중 대부분은 저축은행중앙회 시스템을 공유하며, 자체 개발한 신용평가모형이 없습니다. 대출 신청자의 상환 능력을 정밀하게 판단하는 시스템이 없다면, 부실로 인한 손실 금액이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저축은행의 무심사 간편 대출도 부실을 높이는 요인입니다. 무서류, 무심사 등 간편함을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충분한 검증이 없이 실행된 대출은 연체로 이어질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실제로 2019년 3월 기준 업권별 가계대출 연체율을 살펴보면 저축은행의 연체율은 4.56%로 은행 대비 15.7배나 높게 나타났습니다.
저축은행의 비용 구조에서 차입자 모집 비용이 높은 것도 문제입니다. 저축은행은 모집인이라 불리는 오프라인 영업 채널에 대한 의존도가 높습니다. 모집인은 금융회사와 대출 모집업무 위탁계약을 체결하여 대출 신청 상담, 신청서 접수 및 전달 등 금융회사가 위탁한 업무를 수행하는 대출상담사와 대출 모집법인을 말합니다. 모집인을 통해 대출이 실행되는 경우 저축은행은 이들에게 상당히 높은 수수료를 지급해야 합니다.
불안정한 자본 구조, 인터넷은행
중금리 공급 혁신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출범한 인터넷전문은행도 애초의 취지와는 달리 고신용자에 집중하여 대출을 취급하고 있습니다. 물론 인터넷은행도 나름의 사정이 있습니다.

인터넷은행이 중금리 대출 공급에 소극적인 이유로 가장 먼저 취약한 자본 구조를 꼽을 수 있습니다. *2018년 기준, 인터넷전문은행의 자산은 전체 은행권 자산 대비 0.44%에 불과합니다.
만약 인터넷은행이 자산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리스크가 높은 대출로 위험가중자산을 높인다면 BIS 비율이 하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안정적으로 BIS 비율을 유지하기 위해 인터넷은행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자본확충 혹은 리스크가 높은 대출을 피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2019년 4월 BIS 비율 관리에 실패한 한 인터넷은행은 대출을 전면 중지했고, 자본 확충 후 1년 만에 영업을 재개할 수 있었습니다. 또 다른 인터넷은행은 2019년 11월 급격한 대출 확대로 BIS 비율이 빠르게 낮아지자, 자본 건전성 문제 해결을 위해 5천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나선 바 있습니다. 불안정한 구조의 인터넷은행이 적극적으로 중금리 대출을 공급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인터넷전문은행 신규인가 세부추진방안, 2018.12, 금융위원회
기존 은행과 같이 이자 중심의 수익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인터넷은행의 중금리 대출 공급 활성화를 저해하는 요소입니다. 이자 수익에 매우 의존하고 있는 인터넷은행이 부실 비용이 적은 고신용자 대상 대출에 집중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실제로 인터넷은행의 대출 가운데 1~3등급 차입자의 대출 비중은 96.1%로 국내 시중은행보다도 11.3% 높은 것으로 나타나, 당초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 편 이어보기: 대한민국 중금리 시장 리포트(3): 온투업, 중금리 문제의 대안이 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