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신용자는 많고 중금리 대출은 적다
국내 개인신용대출 시장에는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금리단층’이라 불리는 중금리 개인신용대출 공급 부족 문제입니다.
금융 당국은 중금리 개인신용대출의 기준을 연 6.5~16%로 명시하고 있으나 업권별 평균 대출금리 구간과 이용 대상을 고려하면 중금리 대출은 신용등급 4~7등급의 차입자에게 공급되는 평균 10%초반 (1, 2금융권 평균 금리의 중간)의 대출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래 표에서 볼 수 있듯이 평균 10% 초반의 대출금리를 제공하는 업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전 국민 신용등급 분포와 비교하면 중금리 대출 부족 문제는 더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대출보유자의 신용등급별 구성비를 보면 등급에 따라 점진적으로 줄어드는 모습을 보입니다. 만약 대출이 신용 수준에 맞게 공급이 이뤄졌다면 금리구간별 금액 구성비도 점진적으로 줄어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금리구간별 금액 구성비를 보면 5% 미만에 대출 절반이 몰려있고 가운데인 6%~15%대는 푹 꺼져있는 모습을 보입니다. 즉, 중신용자가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중금리 대출 공급 비중은 확연히 적습니다. 신용 수준에 따라 대출 금리가 산정된다고 볼 때, 중신용자의 대출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갈수록 심해지는 금리단층 문제
중금리 대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2019년 말 중신용자(4~7등급)의 대출금 비중은 전체의 35.6% 수준으로 2012년 말보다 13.8% 줄어들었습니다. 같은 기간 동안 신용대출 차입자 중 중신용자 비중이 5.3%p 감소한 것을 고려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중신용자의 대출 기회와 인당 대출금액이 줄어들고 있던 셈입니다.
반면 신규 대출 중 고신용자(1~3등급)의 대출금 비중은 2012년 44.5%에서 62%로 17.5%p 증가했습니다. 고신용 차입자 비중의 증가폭보다 큰 수치입니다. 대출의 기회와 혜택이 점점 고신용자에게 집중된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대출금 규모를 보면 차이가 더 명확합니다. 2019년 고신용자의 신규 개인신용대출 금액은 약 84조 원으로 2012년에 비해 약 2.5배 늘어났지만, 같은 해 중신용자의 신규 개인신용대출 금액은 약 48조 원으로 동기대비 약 0.27배밖에 증가하지 않았습니다.

고금리 대출, 신용 하락의 악순환
중금리 대출을 이용하지 못하는 중신용자들은 고금리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고금리 대출은 이자 부담을 늘릴 뿐 아니라 차입자를 신용하락의 악순환에 빠지게 합니다. 신용평가사는 2금융권 대출 보유 사실만으로 차입자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합니다. 고금리 대출은 이자가 높기 때문에 차입자의 연체와 부실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입니다.
실제로 저축은행 대출 시 신용등급 하락 폭은 1.61등급으로 은행 대출 시 하락 폭보다 약 6.4배나 높습니다. 만약 상환 부담 등의 이유로 고금리 대출을 여러 차례 이용한다면, 차입자는 1금융권과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손해를 입는 대표적인 예가 Thin-filer라 불리는 신용정보가 부족한 차입자입니다. 이들은 금융 정보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낮은 신용등급을 받고, 1금융권 이용 기회도 제한됩니다. 2019년 6월 기준 우리나라 Thin-filer의 수는 약 1천 3백만 명에 달합니다.
특히 신용정보가 아직 충분하지 않은 청년들은 Thin-filer로 구분되어 중신용자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신용 청년들은 은행에서 저금리 대출을 받기 어렵고, 공급이 부족한 중금리 대출마저도 받지 못해 고금리 대출로 내몰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고 소득이 아직 적은 청년들은 중금리 대출이 절실합니다. 대구 청년 부채실태조사에 따르면, 고금리 대출을 보유한 청년들은 수입의 29%를 대출 상환에 사용할 뿐 아니라, 연체 경험 비율도 33.7%에 달합니다. 고금리 대출의 악순환이 시작된 것입니다.

금리단층 해결을 위한 정부의 노력
정부는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중금리 공급 확대를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습니다. 민간 중금리 대출에 대한 규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한편, 서울보증보험의 보증부 대출인 ‘사잇돌 대출’을 출시하여 정책 서민금융 공급을 확대했습니다.
금융 당국의 적극적인 노력은 소기의 성과로 이어졌습니다. 2018년 중금리 대출 공급 규모는 약 6조 원으로 전년 대비 1.6배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수요보다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은 여전합니다. 업권별 가계대출(주택담보대출 제외) 가운데 중금리 대출의 비중을 살펴보면 은행과 상호금융의 비중이 1%도 되지 않으며, 저축은행 역시 9.41%에 불과합니다.

중금리 대출 공급액을 살펴보면 은행과 상호금융의 소극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2018년 은행에서 공급한 중금리 대출은 1조 원에 미치지 못하는데, 그중에 절반 이상(64%)은 정책자금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은행에서 자체 공급한 중금리 대출은 연간 3,190억 원에 불과합니다.
그나마 저축은행의 공급액은 약 3조 원 수준으로 은행 보다 총량이 많고 자체 공급도 약 1.8조 원에 이르지만, 이들의 평균 금리 수준은 15~17%로 시장에서 원하는 금리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중금리 대출 활성화를 주요 목표로 정부와 금융소비자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출범한 인터넷전문은행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2019년 인터넷은행 2개사가 취급한 신용대출은 총 12조 3천7백억 원에 이르지만, 6% 이하 저금리 구간에 전체 대출의 대부분(97%)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중금리 대출은 전체의 3%가 채 되지 않고, 10~15% 구간의 비중은 전체의 1%에도 못 미칩니다.

중금리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공급은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길래, 중금리 단층은 점점 더 심화되는 걸까요?
다음 편 이어보기: 대한민국 중금리 시장 리포트(2): 중금리 대출 외면하는 금융업권의 속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