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을 찾는 그 순간의 쾌감을 누구보다 좋아하는 사람. 오랫동안 실무를 놓지 않고 싶은, 멋진 시니어 개발자를 꿈꾸는 사람. 피플펀드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구영민 님을 만났습니다.

정답을 찾는 순간의 쾌감.

정말 어렸을 때부터 컴퓨터에 끌려서 자꾸 만져보곤 했는데, 초등학교 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프로그래밍을 처음 시작했어요. 컴퓨터 학원에서 비주얼베이직으로 프로그램과 게임들을 만들어봤는데 생각보다 재미있더라고요.

서울에 정보올림피아드 학원이 몇 군데 없었는데, 마침 그중에 한 곳이 저희 집 근처에 있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학교가 끝나면 그곳에서 매일 9시까지 공부했죠. 꾸준히 하니까 실력이 늘더라고요. 전국 정보올림피아드대회에서 두 차례 수상하기도 했어요.

알고리즘 문제를 풀 때는 너무 어려워서 미칠 것 같지만, 정답을 찾는 그 순간의 쾌감이 정말 좋았어요. 그 희열 때문에 계속 공부했던 것 같아요. 물론 포기하고 싶었을 때도 있었지만 매몰 비용이랄까, 그동안 공부한 것이 아깝기도 했고요. 또 한 가지 원동력을 꼽자면, 당시에 함께 공부하던 친구 두 명. 서로 의지도 하고 경쟁도 하면서 참 열심히 했죠.

피플inside: 구영민

15 원짜리 기계식 키보드.

선린인터넷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그 당시 친구 중의 한 명이 외주를 받아서 일하는 것을 보고, 나도 내가 가진 프로그래밍 능력으로 돈을 벌어보고 싶었어요. 간단한 홈페이지 자동화부터 대학교 과제, 심지어 졸업 과제까지 여러 가지 일을 했죠. 농담 삼아 말하자면, 제가 서울대는 못 갔지만 서울대 과제는 해봤답니다.

건당 1, 2만 원씩 받으면서 한 달을 모으니까 15만 원이 되더라고요. 지금이야 엄청 큰돈이 아니지만, 고등학생 때는 정말 크게 느껴졌거든요. 그 돈으로 뭘 할 수 있을까 한참 고민하다가, 용산으로 달려가서 기계식 키보드를 샀죠. 요새도 그 키보드를 쓰고 있는데, 사용할 때마다 그때 생각이 나요.

파이콘에서 만난 피플펀드.

2017년 파이콘 행사에서 피플펀드를 처음 알게 됐어요. 당시에 정보올림피아드 학원 강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알고리즘 시각화 라이브러리 ipytracer 개발기’라는 제목의 세션에서 발표자에게 ‘C++로 짠 코드도 시각화가 가능한가’ 질문했더니, 얘기가 길어지니까 따로 얘기하자고 하더라고요. 세션이 끝난 후, 발표자와 함께 現CTO 섬기 님과 前CTO 대성 님을 만났죠. 그 자리에서 입사를 권한 것은 아니었고, 대신 회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셨어요. 이후에 몇 번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입사를 제안하셨어요.

저는 섬기님의 ‘사무실이 너무 좁아질 정도로 직원이 너무 많아져서 다음 주에 이사한다’는 말을 듣고 입사를 결정했어요. (웃음) 회사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거든요. 돌이켜보면 그때 제 판단이 틀리진 않았던 것 같아요. 누적 투자금액도 2년 새에 6배 이상 늘어났고, 회사 직원 규모도 거의 두 배가 됐거든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제가 피플펀드에 와서 많이 성장했다는 사실이고요.

피플inside: 구영민

납땜으로 소프트랜딩.

피플펀드 개발팀에는 소프트랜딩이란 게 있어요. 말 그대로 비행기가 부드럽게 착륙하듯, 신입 개발자가 피플펀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죠. 2018년 1월 2일에 인턴으로 합류한 저의 소프트랜딩 과제는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출입문을 열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어요. 그리하여 피플펀드에서 저의 첫 번째 업무는 납땜이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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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니 소프트랜딩 덕분에 피플펀드에 편안하고 재미있게 적응한 것 같아요. 만약 처음부터 지금 제가 맡은 업무 같은 것을 받았다면, 적응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웃음) 게다가 사무실을 옮기기 전까지 모든 분이 ‘문좀’을 정말 요긴하게 사용했거든요. 많은 분께 고맙다는 인사도 정말 많이 받았죠.

다양한 경험새로운 기회.

인턴 때는 선정산 시스템, 그다음에는 대출 신청 쪽 시스템을 개선했고, 지금은 내부 시스템을 개선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여러 팀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기획자와 디자이너 등 비개발자들과 많이 일할 기회가 있었죠. 팩토링 서비스를 오픈하고 운영 인력이 달릴 때는 심지어 제가 직접 운영을 도와드리기도 했고요.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이토록 다양한 사람들과 일할 기회가 흔하진 않잖아요. 덕분에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됐어요.

Internal Product 팀에 합류할 때는 이전과 달리 제가 먼저 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시스템을 개선해 보고 싶었거든요. 각 팀원이 적재적소에서 본인에게 더 잘 맞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먼저 고민하고, 팀원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는 면에서 CTO를 비롯하여 회사가 나를 존중해준다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백엔드 개발자와 DevOps 그리고 앞으로 DBA까지 여러 가지 역할을 수행하면서 제 역량을 늘려나가고 싶어요.

피플inside: 구영민

첫해에는 전체적인 업무를 배웠다면, 올해에는 시스템을 단단하게 만드는 법을 배웠다고 생각해요. 고장을 내고 싶어도 안 나게 만들기 위해 많이 고민했어요. 이제 3년 차가 되어가는데, 일한 기간에 비해 다양한 경험을 했고 소위 말해 이력서에 쓸 게 많아졌죠.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은 아무래도 선정산 시스템을 만든 것과 TM자동화 작업이었어요. 선정산 시스템의 경우엔 주어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혼자서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이 많아서 기억에 남아요. 불가능해 보였지만 결국 서비스를 런칭했죠.

TM자동화 작업은 개인신용대출 신청부터 기표까지의 시스템을 갈아엎었던 프로젝트였어요. 사업 초기에 만들어지고 유지보수가 안 되어서 그 누구도 히스토리를 알지 못하는 코드, 읽기도 싫을 정도의 확장성이 없는 코드를 어떻게든 따라가며 시스템개편을 했는데, 그것을 무중단으로 배포했다는 점에서 제게는 의미가 커요. 쉽게 말하면 상태별로 다른 흐름Flow을 타도록 구분해서, 서로의 로직이 섞이지 않게 만든 거죠. 개발 단계에서는 수많은 상황을 고려해야 했고 배포 직후에는 미친 듯이 발생하는 다양한 이슈들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부 잡아냈어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절대 쉽지 않은 작업이었지만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어요. 

일하기 위해” 배우는 곳.

솔직히 피플펀드에 합류하고 하루하루가 챌린지였어요. 어릴 때부터 코딩을 하고 외주 작업도 해봤지만, 회사에서 일하는 건 전혀 달랐어요. 특히 제가 입사 초기에 조금 착각했던 것이 하나 있어요. 회사를 ‘일하기 위해 배우는 곳’이라 칭한다면 ‘일하기 위해’에 밑줄을 쳐야 하는데, 저는 ‘배우는 곳’에 밑줄을 쳤었거든요.

회사를 약간 학교의 연장으로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는데, 대학과 실무는 전혀 다르다는 것만 알고 시작해도 도움이 될 거예요. 예전의 저를 만난다면 그 얘기를 해주고 싶어요.

사실 어차피 말로 설명해서 도움이 될 건 별로 없을 것 같아요. 차라리 인턴으로라도 일해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게 아니라면 실제로 제품/서비스를 제작해서 출시하고, 고객의 소리를 들어본다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제가 할 수 있는 조언은 이 정도가 아닐까 싶네요.

피플inside: 구영민

다양성을 존중하고 성장을 돕는 문화.

누군가 피플펀드에 관해 묻는다면 사람 스트레스가 적고 차별 없이 대우해주는 곳,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있는 곳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제 생각과 의견을 존중해주고, 도움이 필요할 땐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팀 안에서뿐 아니라 다른 팀과 협업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최근에 누군가 제게 물어봤어요. 영민 님이 세 살 어려지고, 피플펀드에 입사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겠냐고. 바로 아니라고 답했죠. 앞서 말한 것처럼 저는피플펀드에 와서 정말 많이 성장할 수 있었거든요. 그리고 혹 2년 전으로 돌아가더라도, 저는 다시 피플펀드를 선택할 거예요.

미래에 대해 크게 생각하는 편은 아니지만, 막연하게 그리고 있는 모습은 있어요. 코딩하는 백발 할아버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컨퍼런스에서 맥북을 사용하는 백발노인. 그런 분을 본 적이 있는데 참 멋지더라고요. 나이가 많이 들고 연차가 쌓여도 오랫동안 실무를 놓지 않는 시니어 개발자들을 굉장히 존경해요. 저도 그렇게 되고 싶어요.


다양성을 존중하고 성장을 돕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