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다해, 마음을 사는 사람. 끊임없이 자신의 틀을 깨며, 금융에 대한 시야를 넓히는 사람. 피플펀드 기관투자그룹의 백정훈 님을 만났습니다.

기관과 소통하는 사람.

제 역할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피플펀드에서 판매하는 대출상품들을 기관투자자에게 판매하는 거예요. 물론 그것을 위해선 기관투자자들과 계속 소통하며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기관투자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회사 내부에서 준비할 것들도 많죠. 또 상품 및 판매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선 국내 금융시장의 동향과 우리 업계와 관련된 법안에 관한 것 등도 수시로 살펴야 하고요.

글로벌 금융위기, 금융산업에 대한 관심.

제가 전공했던 농업경제학은 농산업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를 다루는데, 그중에 제일 기초는 경제학이었어요. 게다가 당시는 금융산업이 워낙 주목받던 시기였죠. 카드 사태 이후 국내 경기가 회복되던 와중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는데, 저 역시 시장의 변동폭도 매우 컸고 언론과 책을 통해 수많은 에피소드를 간접적으로 겪으며 자연스레 순수 학문보다 금융산업과 금융상품에 더 많은 관심을 두게 됐어요.

그래서 금융경제연구동아리에 들어갔는데, 금융과 경제 관련된 주제를 정해서 연구를 하거나 통화경시대회에 나가는 등 학문적인 색이 짙은 곳이었죠. 유학을 준비하거나 한국은행, 금감원 등 금융공기업을 가고자 하는 학생들도 많았고요. 하지만 제가 활동할 당시에는 금융 산업에 관심 있는 친구들도 많았고, 금융위기의 발생 원인이 되었던 구조화상품 등 금융상품에 관한 연구를 많이 했어요.

첫 번째 커리어, 채권 브로커.

저는 증권회사에서 채권을 중개하고 매매하는 사람, 일명 채권 브로커로 커리어를 시작했어요. 사실 외국계 투자은행에서 일하고 싶었는데, 저보다 뛰어난 친구들이 많아서인지 저한테까지는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죠. 그러던 중에 국내 증권사에서 채권브로커로 일하고 있던 친한 선배가 왜 굳이 외국계 투자은행을 고집하냐 묻더라고요. 국내증권사에서도 더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다면서 본인의 연봉을 얘기해줬는데, 깜짝 놀랄 만큼 높았어요. 애초에 저는 금융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원대한 꿈같은 건 없었고 그저 돈이나 많이 벌어서 나와 내 가정의 행복을 찾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국내 증권사에서 채권 브로커가 되기로 마음을 바꿨어요.

처음에는 주로 국고채, 통안채, 회사채 등 유통량이 많은 채권 위주로 거래했어요. 그러다 보니 나만 중개할 수 있는 고유한 상품이 있는가 보단 얼마나 많은 고객을 보유하고, 그들에게 얼마나 공격적으로 영업하는가에 실적이 좌우되는 상황이었죠. 그러다 보니 은행, 보험사, 자산운용사, 증권사 등에서 채권을 매매하는 담당자들에게 콜드콜을 많이 했어요.

마음을 다해, 마음을 사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어요. 한 외국계 투자은행의 담당자가 거래량이 많다는 소문만 듣고 다짜고짜 연락한 적이 있거든요. 전혀 모르는 사이였지만, 혹시 잘되면 꽤 높은 실적을 올릴 수 있겠다는 생각뿐이었죠. 또 그 사람과의 거래가 시장에서 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도 있었고요.

속된 말로 그 사람을 뚫어보려고 정말 매일 전화했어요. “저 바빠요.” 첫 통화는 한마디로 끝났어요. 거의 일주일 동안은 같은 시간에 전화를 걸었는데 받자마자 바로 끊어졌죠. 그래도 계속하니까 저라는 존재는 인지하더라고요. 일주일 지나니까 대답이 조금 길어졌어요. “제가 지금 회의에 가야 하니까 나중에 통화하시죠.” 그렇게 한 3주가 지나니까 대답이 또 조금 바뀌었어요. “어디에서 근무하신다고요? 언제 한번 보시죠.”

다시 시간이 흘러 같은 시각에 매일 전화를 건지 한 달 정도 되던 날 ‘내일 몇 시까지 오라’더라고요. 약속한 시각에 찾아갔더니 누가 이렇게 매일같이 자길 귀찮게 하는지 얼굴 좀 보고 싶어서 오라고 했대요. (웃음) 어찌 됐든 사람은 누군가를 대면하면 상대에 관해 궁금해지기 마련이거든요. 그분과 그 자리에서 거의 한 시간 동안 굉장히 진솔한 대화를 나눴어요. 그동안 그런 방식으로 자신의 마음을 움직인 사람은 없었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주니어가.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첫 거래가 나왔죠.

제게는 정말 큰 사건이었어요. 접대가 만연한 시장에서 일면식도 없던 고객과 밥도 한 번 같이 안 먹었는데 새로운 거래가 나왔잖아요. 갑자기 매매가 나오니까 팀에서도 깜짝 놀랐죠. 사무실에서 기립박수도 받았어요. 그때 영업에 대한 제 생각이 바뀌었어요. 영업에 있어 기본적으로 상품이 중요하겠지만, 고객의 마음을 사는 것 또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더 열심히 일하는 계기가 됐죠.

금융에 대한 시야를 넓히다.

채권 브로커 생활을 한 지 5년쯤 지난 어느 날 문득, 이렇게 일하다가는 바보가 되겠다 싶었어요. 제가 단순히 채권을 중개하는 업무만 하니까, 더 이상 상품이나 시장에 대해 별로 고민하지 않고 오로지 고객 영업에만 집중하고 있더라고요. 이왕 금융시장에 몸담았으니까 조금 더 시야를 넓혀야겠다 생각했고, 취급하는 상품을 해외채권과 구조화채권으로 과감히 바꿨죠.

그 시기에는 확실히 넓은 시장을 경험할 수 있었어요. 미국, 유럽 등 전 세계에 있는 수많은 기업과 기관들이 발행하는 다양한 통화의 채권을 거래했거든요. 원달러 스왑포인트가 역전되어 기관들이 달러채권 이외의 대안을 찾던 때는 호주달러의 금리 손실이 적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호주달러 채권을 거래하기 위해 약 30명의 기관투자자를 데리고 직접 호주에 간 적도 있어요. 은행과 대학교, 기업 등 20여 곳의 채권 발행 담당자들과 미팅한 결과, 멜버른대학교의 25년 만기 호주달러채권 발행을 국내 최초로 주선했죠. 그땐 굉장히 짜릿했어요. 과감한 결정에 대한 보상을 얻은 순간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열심히 일하던 중에, 금융경제연구동아리의 절친한 선배이자 현재 기관투자총괄이사인 성열 님을 통해 피플펀드에 대해 알게 됐어요. 은행과 함께 새로운 대출 상품을 만든 것을 보고 무릎을 탁 쳤죠. 처음엔 ‘은행이 뭘 믿고 P2P회사와 이런 상품을 만드나.. 정말 미쳤구나’ 싶었어요. 그렇지만 또 ‘이게 진짜 금융이구나’ 신기하고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죠. 은행의 문턱을 넘지 못했지만 진짜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 피플펀드에서는 1금융권 대출을 받을 기회가 있잖아요. 그 점에 가장 큰 매력을 느꼈고, 피플펀드에 가면 진짜 금융을 배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솔직히 금융상품의 중개나 트레이딩은 기술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누군가는 차트를 연구해서 돈을 벌고, 또 누군가는 가격의 비효율이 발생하는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여 돈을 벌기도 하죠. 반면에 장기적 관점으로 투자하는 사람도 있고요. 결국 금융의 한 축이 투자인 것은 맞지만, 투자자는 투자라는 행위를 통해 돈을 버는 것이 더 큰 관심사이지 내가 투자한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는 잘 모르거든요. 전에 제가 다뤘던 상품들도 그랬어요. 그렇지만 금융시장의 반대편에 있는, 돈이 필요한 사람이 훨씬 절박하잖아요. 어찌 보면 투자는 선택일지 몰라도, 대출은 선택이 아니라 생사의 문제일 수도 있으니까요.

피플펀드에서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다.

금융의 역할은 결국 피플펀드의 미션과 일치한다고 생각해요. 진짜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조금 더 좋은 조건으로 자금을 조달해주는 것, 그걸 이루고 싶어요. 그러니까 결국 금융은 사회적인 문제와 직결돼요. 지금 이 순간에도 단돈 백만원을 구할 수 없는 사람도 많아요. 저는 얼마 전에 인천 장발장 이야기를 보고 지하철에서 울었거든요. 그 사람에게 도움을 준 경찰관의 말처럼, 요즘 밥 굶고 다니는 사람이 어딨어요? 하지만 배가 고파서 쌀을 훔치는 사람이 실제로 있잖아요.

저는 피플펀드 덕분에 금융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게 됐고,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거창하게 세상을 바꾸겠다는 것은 아니어도, 제 역할을 못 하는 금융의 현실을 바꾸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어요. 개인으로선 여전히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하지만, 일하는 목표가 조금 더 명확해진 거죠.

피플펀드에 오게 되어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어요. 바로 구성원들. 다양한 분야에서 온 다양한 능력을 가진 구성원들이 함께 모여 일하니까 더 창의적인 시도를 많이 할 수 있더라고요. 솔직히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됐어요. 제가 피플펀드에 합류하고 가장 많이 했던 말이 아마 “그거 안 될 텐데..”일 거예요. 전 직장에서는 법과 시장의 관습 안에서만 일하다 보니, 내가 하는 것만을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거든요. 피플펀드의 훌륭한 동료들로부터, 특히 그들의 틀을 깨는 사고방식과 실행능력을 보며 정말 많이 배웠어요. 덕분에 제가 갇혀있던 틀을 깨고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 거죠.

‘카카오페이’와 ‘은행 대출’.

이제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 및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온투법)’이 생겼으니까, 앞으로 기관들의 투자가 매우 활발해질 거에요. 기관들은 피플펀드를 두 가지 키워드로 정의해요. ‘카카오페이’와 ‘은행 대출’. 이 때문에 피플펀드 상품에 매력을 많이 느끼는 거죠. 해당 기관들의 내부 심사과정을 거쳐야겠지만, 실무자들은 이미 우리 상품이 매력적이라는 것을 많이 알고 있어요.

‘카카오페이’라는 키워드로 정의하는 이유는, 기관들 역시 플랫폼의 파괴력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죠. 현재 금융기관들 역시 앞다투어 다양한 플랫폼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카카오나 토스와 같은 이용자를 보유한 곳은 별로 없죠. 대다수의 스마트폰 유저가 사용하는 플랫폼을 통해 우리 상품이 판매된다는 것은 그들로서도 굉장히 주목할만한 일이거든요. 또한 기관은 카카오페이가 우리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 이유, 바로 ‘은행 대출’이라는 점에도 주목하고 있고요.

이러한 이유로 ‘온투법’이 시행되면 기관투자자의 참여가 늘어날 것이고, 이는 피플펀드 성장에 엄청난 촉매제의 역할을 할 거예요. 피플펀드를 통해 은행 대출을 경험하는 대출자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함과 동시에 기관이 투자하는 안정적인 상품이라는 인식이 생기겠죠. 물론 이러한 사이클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우리 피플펀드 자체의 체력을 반드시 길러야 하겠죠. 그 과정이 매우 힘들겠지만, 소비자금융에 집중하는 과감한 선택을 하고 그 대출 상품의 안정성을 도모하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는 동료들을 보면 이미 우리는 착실하게 그 여정을 걷고 있다고 봐요.

존중이라는 단어의 가치.

커리어 내내 세일즈만 해서 그런지, 저는 우리 인생 자체가 영업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타인에게 더 좋은 인상을 남기고, 더 좋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싶어하잖아요. 또 그렇게 되려면 타인을 존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죠. 심지어 부모 자식 간이나 부부 사이에서도 그러한 노력이 필요하잖아요. 회사도 마찬가지고요.

최근 금융기관이 판매한 구조화상품이나 펀드 때문에 세상이 떠들썩한데, 이런 문제는 아무리 강하게 규제해도 돈이 가장 큰 가치로 인정받는 금융시장의 특성 때문이겠죠. 저는 이런 사건들이 존중이라는 단어가 금융시장에서 어떤 가치를 갖는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어요. 좋은 금융상품을 시장에 제공하기 위해서는 상품을 이해하고 고객을 설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고객을 존중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노력이 있었다면, 최근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도 예방할 수 있었겠죠.

저는 피플펀드가 이미 그런 노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뜬구름 잡는 얘기인 것 같았지만, 회사 내에서부터 상호 존중하는 기업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다양한 시도도 해 왔고요. 물론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금융의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사람들에게 좋은 상품을 제공하기 위해 매일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매일 만나는 대출자와 투자자에 대한 존중을 실천하는 것 아닐까요? 저는 머지않아 시장이 우리를 잘 알아봐 주리라 굳게 믿고 있어요.


금융에 대해 더 깊게 고민하는